현송월의 직업은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이었으며, 모란봉악단 단장 및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랍니다. 주로 북한 선전 및 예술 분야에서 대표자로 인식된답니다.
김정은과 현송월과의 관계는 김정은의 나이가 10대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마친 뒤에, 귀국한 2000년, 평양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사실 상 고향인 원산에서 어머니 고용희와 생활했는데 정말로 유배 생활이나 다름이 없었답니다.
원산에 위치한 김정일의 한 별장에서 생활했으나, 별장 경내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답니다. 더욱이 원산에는 김정은 정도의 고위층 자녀가 다닐 학교도 없는지라, 김정일이 개인 교사를 붙여서 교육을 하던 터라 김정은이 이를 매우 지루해하고 못 마땅했다고 한답니다.
이런 환경에서 김정일은 1~2주일에 한 번씩 원산에 오면서 고용희와 그 자녀들을 돌봤던 것인데, 이런 과정에서 김정일과 그 가족의 시중을 들기 위한 조선로동당 5과 인원들도 함께 왔던 것이며 여기에 현송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정은과 현송월은 이 때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현송월은 자신보다 7살 어린 김정은을 특별히 측은히 여겨 잘 돌봐주었으며, 김정은 역시 현송월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누나로 여기면서 잘 따랐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어찌보면은 제대로 된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을 김정은에게 현송월의 친절은 그 의미가 매우 크게 다가왔을 수 있답니다. 김정은의 이러한 감정은 현송월에 대한 연모로 발전했으며, 현송월도 이러한 김정은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답니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극대노하였으며, 결국 폭발하여 김정은에게 손찌검을 하기에 이르렀고, 현송월도 조선로동당 5과에서 축출되어 다른 남성과 강제 결혼을 당하게 되었답니다. 이후에 김정은은 김여정과 김일성종합대학의 특별 과정에 강제로 입학되어 학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되어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김정은의 사생활까지 신경쓰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김정은이 결국 현송월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한답니다. 이쯤되자 김정일도 이러한 관계에 대해 포기해 버렸던 것이데, 이런 사실은 은하수관현악단의 3·8국제부녀절 기념행사에서 드러난답니다.
당시 행사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참석했는데, 현송월은 사회자의 즉석 제안으로 무대에 올랐답니다. 사실 북한의 공식적인 행사와 방송은 절대로 즉흥적인 진행이 없답니다. 즉, 정말로 사전에 거의 초 단위로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나도, 당시 행사는 김정은이 와서 직접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는 1호 행사였답니다.
보통 이러한 1호 행사는 사전 리허설까지 하는 마당에 즉흥적으로 누구를 불러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랍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명인 김정은이 현송월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사회자에게 명령한 것으로 볼 수 있답니다.
참고로, 주목할 건 현송월이 아니라 현송월의 남편이랍니다. 남편은 김정은이 2000년대 중반에 포병부대에 근무 시에 군생활이 힘들 때 김정은을 다독이고 보살펴준 군관이었던 것인데,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된 후 그를 불러들여 자신의 최측근으로 삼았답니다. 지금은 호위사령부에 근무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하며, 그의 집에는 김정은과의 직통전화가 개설될 정도로 김정은의 신임이 대단하다고 한답니다. 현송월과 그 군관과의 결혼도 김정은이 중매한 것이라고 한답니다.